세계 최대 입자 가속기 건설 추진…CERN과 중국의 ‘과학 패권’ 경쟁 본격화

세계 최대 입자 가속기 건설 추진…CERN과 중국의 ‘과학 패권’ 경쟁 본격화
대형 강입자 충돌기에서의 CMS 실험. 출처: Piotr Traczyk/CERN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차세대 입자 가속기인 ‘미래 순환 가속기(FCC)’ 건설을 본격 추진하면서, 전 세계 과학계와 정부 사이에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2012년 힉스 입자를 발견하며 물리학계의 지각 변동을 이끌었던 CERN은 이제 기존 장비인 LHC의 한계를 넘어, 더 강력하고 정밀한 입자 충돌 실험을 위한 초대형 가속기 계획을 공개했다.

새롭게 제안된 FCC는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 일대에 지하 100km 길이의 거대한 원형 터널을 뚫고, 그 안에서 지금보다 10배 이상 높은 에너지로 입자를 충돌시키는 초대형 장치다. 이론적으로는 힉스 입자의 정밀 측정은 물론, 암흑물질 등 미지의 물리 현상까지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총 사업비는 200억 유로(약 3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되며, 완공 목표는 2040년대다.

CERN 지도는 91km 원형 터널을 파야 할 곳을 보여줍니다. 더 작은 LHC는 왼쪽에 있습니다. 출처: CERN

하지만 이 초거대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선 국제적 협력과 정치적 결단이 필수다.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유럽 국가들의 공조는 물론, 비유럽권 파트너들의 참여도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이 이와 유사한 규모의 가속기 프로젝트인 CEPC를 추진 중이어서 과학계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은 2027년 착공을 목표로 기술 설계를 마쳤으며, 향후 세계 최대의 입자 충돌 실험을 자국에서 수행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출처: https://go.nature.com/4TVDVSR

과학계 내부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차세대 가속기가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주장과 함께, LHC 이후 뚜렷한 추가 발견이 없었다는 현실을 근거로 “투자 대비 성과가 불확실하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환경적 부담과 기후 변화 대응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CERN은 2025년까지 타당성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국제 자금 모집과 정치적 승인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유럽은 다시 한 번 기초과학 분야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반면,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무산된다면 중국이 입자물리학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번 논쟁은 단순한 과학 프로젝트를 넘어, 21세기 인류가 기초과학에 얼마나 투자할 의지가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과연 인류는 또 한 번의 거대한 도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거대 가속기를 둘러싼 세계 과학계의 선택이 주목된다.

미래 원형 충돌기의 양성자-양성자 충돌기 단계의 터널에 대한 상상도. 출처: CERN을 통한 PIXELR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