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안전, 무너지는 신뢰… 반복되는 한국 건설 현장의 부실공사 사고

최근 건설 붕괴는 선분양제의 속도 경쟁, 독립성 없는 감리, 책임감 부족한 건설 주체, 실효성 없는 국가 감독이 낳은 구조적 문제입니다. 문제 은폐와 안전 불감증이 만연하며, 선분양, 감리, 처벌 등 시스템 전반의 근본 개혁이 시급합니다.

흔들리는 안전, 무너지는 신뢰… 반복되는 한국 건설 현장의 부실공사 사고
출처: 한국도시정책정보센터

잇따른 붕괴 사고에도… 근본 원인 외면하는 한국 건설 현장

최근 광명 신안산선 복선전철 공사 현장 붕괴 사고는 한국 건설 현장의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구조적 결함을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냈다. 인천 검단 아파트 붕괴,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등 유사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시스템적 취약성이 현실화된 '예고된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거세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발생해도 문제를 축소·은폐하거나, 안전 문제의 심각성 자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붕괴 사고 현장 모습. 출처:연합뉴스

'빨리빨리' 선분양제 그늘 아래… 품질은 뒷전, 책임감도 실종

한국 주택 공급의 지배적인 방식인 '선분양 후 입주' 제도는 건설사에게 비용 절감과 공사 기간 단축을 최우선 목표로 삼게 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미 공사 대금을 확보한 상황에서 완공 후 품질에 대한 책임감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발생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무량판 구조 철근 누락), 광주 화정 아이파크 외벽 붕괴(콘크리트 강도 부족, 지지대 조기 철거 등)와 같은 대형 부실시공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뿐만 아니라, 신축 아파트에서 곰팡이 슨 자재 사용, KS 마크 위조 유리 사용, 외벽 휨 및 마감 불량, 내부 설비 미시공 등 다양한 유형의 부실·하자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되는 심사 신청 건수는 3년 만에 2배 이상 급증하는 등 소비자 피해와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문제 발견해도 '쉬쉬'… 현장 감리는 '유명무실'

건설 현장의 품질과 안전을 감시해야 할 감리 시스템마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민간 공사 현장에서는 시공사가 감리자를 선정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관행 탓에 , 감리자가 '고용주'인 시공사의 눈치를 보며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감독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문제가 발견되어도 재시공 지시나 공사 중지 명령 등 법적으로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기 쉽지 않고, 때로는 감리자의 기술적 전문성 부족이나 과도한 서류 업무 부담으로 현장 감독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공공 공사에서는 발주처(LH 등) 퇴직자가 감리업체에 재취업해 수주에 영향을 미치는 '전관예우' 관행까지 지적되며 감리 시스템의 공정성과 독립성에 대한 의문을 키우고 있다.

입주 지연에 하자 투성이…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자 몫

시행사와 시공사의 책임의식 부재가 막대한 피해를 입주 예정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충북 진천의 '풍림 아이원 트리니움' 아파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시행사인 대명수안과 시공사 풍림산업의 관리 부실로 인해 당초 2023년 10월이었던 입주 예정일이 네 차례나 연기되면서 2025년 6월로 총 20개월 지연됐다. 특히 시행사가 일방적으로 진행한 사전 점검에서는 천장 누수와 곰팡이, 벽체 균열, 베란다 난간 파손, 철근 노출 등 심각한 하자가 드러나 현장은 마치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입주 예정자들이 큰 피해와 분노를 호소하고 있지만, 시행사 측은 계약서에 명시된 최소한의 지체 보상금(3%) 지급 외에는 중도금 추가 대출 이자나 추가 주거 비용과 같은 실질적 피해 보상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 공분을 사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해당 시행사가 다른 사업장에서도 공사 지연과 하자 문제를 반복적으로 일으켜 왔다는 점에서, 이 기업의 책임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제기된다. 선분양 제도가 낳은 대표적인 피해 사례라 할 수 있다.

진천 풍림아이원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사전 입주 점검일 사진 출처: 입주 예정자 모임

솜방망이 처벌 속 반복되는 '후진국형 사고'… 국가 감독 시스템도 '구멍'

정부의 감독 시스템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매년 전국 수만 개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수많은 지적사항을 발견하지만 , 대부분 실질적인 처벌보다는 시정명령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미흡한 조치는 안전 불감증을 근절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부실 공사를 관리·감독해야 할 지역건축안전센터는 상당수 지자체에서 설치조차 못 했거나, 설치했더라도 전문 인력(특히 건축구조기술사) 부족으로 '반쪽 운영'에 그치는 실정이다. 이는 국가 차원의 감독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여준다.

근본적 처방 없이는 안전 없다… 시스템 전면 개혁 요구

전문가들은 더 이상 문제를 숨기고 안전을 외면하는 관행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반복되는 건설 위기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시스템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개혁이 필수적이다. ▲후분양제 단계적 확대 및 선분양 자격 요건 강화, ▲허가권자(지자체 등)가 감리자를 지정하는 등 감리 독립성 확보 및 권한 강화, ▲부실 기업에 대한 처벌 강화 및 입주자 피해 구제 실효성 확보, ▲국가 감독기관의 인력·예산 확충 및 처벌 강화, 나아가 건설안전 전담 독립기구 설립 검토 등 다각적인 정책 추진이 시급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한 부실 공사의 악순환을 이제는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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